2009년 04월 29일
세대의 망각
일전에도 적은 적 있지만...
일본에서 PC의 지위는 다른나라들과 좀 다르다.
그런 면에서 아예 일상 필수 가전제품과 동급에 놓는 한국은 더 이상하지만...
옛날옛적 컴퓨터의 민간보급기, 일본에서
PC는 메인프레임의 후계로 산업용, 업무용의 지위를 가지는 생산재로 보급되고,
게임전용기기가 가정용으로 원활히 소비재로서 보급되었다.
범용성을 버리고 딱 필요한 만큼의 기능을 가진 특화된 기기로 공급부터 나뉜 것이다.
더우기 일본 PC의 표준이 되어버린 NEC의 9801은 자체 HW 설계로,
CPU도 IBM-PC/XT,AT,386 과 같은 것을 쓰고, MS에서 MS-DOS를 OS로 라이센싱했지만
호환이 되지 않았다.
해외와의 개발/사용에 관한 연계를 많은 부분에서 끊고 독자적으로 갔기 때문에
시장이 좁아 고비용구조가 되었다.
이런 쇄국정책이 윈도우95 라는 흑선으로 인해 도저히 개국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올 때까지
내부에서 골골 앓으며 유지되었다.
(그런 면에서 DOS/V는 마치 란학 같은 존재였다.)
일본사람들의 상식으로 게임은 게임기, 업무는 PC 였기 때문에
PC로 게임하는 사람들은 돈이 많거나 전문가였고, PC는 결코 일반인이 사용하는 기기가 아니었다.
글은 와프로 (글 치고 저장하는 기능 만 있는 초기 랩탑(노트북) 닮은 전자 타자기) 로 치고,
게임은 파미콘으로 한다.
파소콘(PC) 이라는 것은 PC를 필요로 하는 전문가 만 쓰는 것.
또는 '당신이 말하는 파소콘은 우리집 아이들이 쓰는 MSX 를 말하는가?'
이게 80년대 까지만 해도 일본사람들의 기본개념이었다.
이제 80년대 말이 되어가니 그렇지 않아도 버블붕괴로 힘든 일본에서
해외에서 발전/축적된 PC기반의 어플리케이션은 무시하게 힘든 매력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왜 PC98의 답답한 기능에 만족해야하나. 왜 이 고비용을 감수해야 하나.
국내의 호환성? 이 지경이면 차라리 저 물건너 것을 쓰는 편이 훨씬 낫다.
이런 수요가 무시못할 만큼 발전하고,
이 수요를 바탕으로 MS-DOS 4.0 을 기반으로 일본어를 완벽지원하는 OS를
MS에서 출시하면서 일본의 IBM호환기 마켓을 노렸다.
90년대 초 만해도 아키하바라는 PC98 용 HW/SW 가 주류였지만,
이것이 윈도우95의 출시로 급격히 IBM호환기 마켓으로 변화되었다.
내가 군에 입대한게 95년이었는데, 휴가 나와서 볼 때 마다 세상이 바뀌었다.
97년 제대할 때 이미 구세대는 가고 한국은 윈도우와 인터넷의 환경이 이루어 졌다.
프로그래밍도 다 윈도우 개발환경이 되었고 DOS때와 같은 언어라도 윈도우 API와 SDK를 알아야 했다.
(일본 역시 윈도우의 나라가 되었지만, 인터넷은 달랐다.)
미국에서 발달한 네트워킹환경과 어플리케이션의 개념을 아무리 보고 들었다 해도
폐쇠된 업계에서는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고 백기를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PC98 만의 유니크한 시장이었던 전자음악 부분은 그 후로도 한동안 살아남았다.
윈도우의 적용으로 일본 OA는 미국의 SW를 시간차 없이 사용가능하게 되었고
이것이 현재 일본의 PC기반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럼 일반가정은 어떻게 되었는가.
여전히 PC를 보는 관점은 가정에서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크지않은 관점의 변화라도 수요로는 어느 정도 작용하였다.
PC98에서 있었던 소수의 PC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SW메이커가 옮겨가는 시기를 따라 그대로 윈도우 머신으로 이동해 갔다.
- 코에이의 전략시뮬레이션게임, 게임기에서 허용되지 않는 어덜트 게임 류
보다 사용하기 편한 환경과 부담없어진 가격의 영향으로
집에서도 개인이 업무용PC를 가지게 된 직장인이 늘었다.
장래 전산전문가를 노리는 학생들 역시 이 부류로 함께 수요가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에서 PC는 전혀 대중적이지 않았다.
거의 1가구1PC 또는 1인1PC를 노리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PC의 수요가 다른 곳에서 해결되었다.
90년대 윈도우와 함께 보급이 이루어진 것이 인터넷.
인터넷 웹사이트, 검색, 이메일 의 능력을 가진 개인을 위한 PC가
거의 운명적으로 일본인에 맞추어 마련된 것이다.
사실 전문가가 아닌 개인이 PC를 사용한다면
인터넷/이메일/게임 으로 거의 모든 용도가 압축될 것이다.
그중 게임을 (약간)제외한 모든 기능을 가진 기기가 PHS
지금 말하는 2세대의 휴대전화로 보급된 것이다.
NTT에서 사업을 벌인 도코모의 휴대전화는
시대가 원하는 거의 모든 기능을 갖추고 있었고
성공적인 시장장악으로 이 수요를 충족시켰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동안 일본인이 핸드폰으로 보낸 메일은 단연코 PC키보드로 보낸 메일보다 많았고,
아무리 ADSL 고속통신망이 설치된다 해도 민간 인터넷 보급률 역시 휴대전화를 통한 보급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글이 길어졌지만 간단히 말해
바깥에서 보기에 일본은 PC의 수요를 휴대인터넷 환경에서 거의 흡수하여
1차로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고, PC는 2차에 불과하다고 느껴진다.
그런데 이 글의 원 작자는 그러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다.
시대가 그만큼 바뀌었다는 소리일까.
예전 어떤 글에 2CH 에서
학교의 아이돌을 사진으로 찍어 현상해서 파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일본은 디카가 90년대 이미 빨리 보급되긴 했고,
휴대전화에 기본적으로 사진찍는 기능이 탑재된 것은 2천년대 중반 이후이다.
(2002 월드컵 만 해도 샤메일의 J-폰 만 디카의 사진기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벌써 아날로그로 사진을 찍고 현상하여 인화지에 박힌 실물 사진을 만드는 작업을
소수의 사람들 만 할수 있던 시절을 잊고 있다.
최근 제5공화국의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은 더 잔인하고 야만적인 면이 있다고
(순수하게) 놀라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제국시절 고등경찰시대를 기억하는 것은 매우 매우 무리일 것이다.
그 시절들을 살았던 사람들마저 정말 그런 시대가 있었나 가물가물할 정도이니 오죽하겠나.
이런 글을 볼 때마다 기록이 아쉽고 교육이 아쉽다.
이제 집단으로서의 사람들이 기억을 잊는 기본기간이라는 30년은 넘었다.
한국에서야 좀 다르지만 세계적으로는 큰 전쟁 후 60년.
과거를 잊은 세대가 다시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쓸데없이 이런 글로 다시 느끼고 있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컨트롤 가능하다고 자신하는 무리들이 어디서 득세하지 않기 만을 바랄 뿐이다.
시작은 결정할 수 있어도 그 끝은 신의 뜻에 달려 있을테니
ps.
오해없고자 쓰자면, 원문이 일본과 관련된 것이지만
뒷 부분의 내용은 딱히 일본에 관련된 내용이 아닙니다.
보편적으로 한국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미국이든 러시아든....
1차대전 때는 적절한 선택을 했던 나라가 2차대전 때는 또 다른 선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도 국지적인 전쟁을 벌이고 끝냈습니다.
살면서 그때그때 판단이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고
판단과 관계없이 결과는 또 엉뚱하게 나올 수 있으니까요.
# by | 2009/04/29 08:46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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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저 글을 읽고 세대의 망각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걸 설명하자면 일반인의 상식이 아닌 앞부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필요에 의해 역사적 배경을 서술했습니다.
이게 정형을 지킬 공문도 아니고...
저런 글을 보고도 이런 걱정을 떠올리는 제가 병이라면 병이겠죠.
(사실 앞부분이 떡밥?)